교육소식

전국의 토론대회란 대회는 다 휩쓴 '시골학교의 힘'

백두진인 2009. 6. 6. 11:09

전국의 토론대회란 대회는 다 휩쓴 '시골학교의 힘'
경기 안성 가온高의 NIE
특목고·강남 학원도 벤치마킹

 

 

 

지난 22일 숙명여자대학교 명신관에서 열린 '2008 전국 독서토론대회'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학교가 있었다.

학교법인 호원학원 가온고등학교(학교장 변권훈). 본선 진출 16개 팀 중 유일하게 특목고가 아닌 학교로, 인문계와 실업계가 섞인 경기도 안성의 한 종합학교였다. 그런데, 심사자나 참가자나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다. 이 학교는 이미 2002년 서울대 주최 논술경시대회에서 최고상인 총장상을 수상한 뒤 전국의 토론대회란 대회는 모두 휩쓸어 명성이 자자한 터였다.

이 시골 학교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NIE였다. 10년간 매일 전교생에게 신문을 읽힌 결과 이 학교엔 '기적' 같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2002년 졸업생 105명 중 9명에 그쳤던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진학자가 2007년에는 32명으로 늘었다. 입학 때 같은 성적을 보이던 이 학교 학생과 이 지역의 유명 A학교 학생을 1대 1로 비교해 3년 후 졸업 때 다시 살펴보니, 이 학교 학생들이 대부분 더 높은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 10년간 매일 NIE를 해온 가온고등학교는 대부분의 과목을‘학생 수준별 이동수업’방식으로 운영한다. 지난 25일 1학년 1반 학생들이 토론전문 지도교사인 김수연 교사로부터 신문 활용 수업을 받고 있다. 김 교사 역시 이 학교 출신으로, 재학 시절 전국논술대회에서 수상하고 고려대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한 실력파다. /주완중 기자wjjoo@chosun.com
이 같은 변화는 1999년 변권훈 교장이 윤치영(50·인문교육부장) 교사를 주축으로 수업 체계를 재정비하면서 시작됐다. 그 첫 시도로 모든 학급의 1교시를 NIE로 바꾸었다. 교사들은 직접 교재를 만들었다. NIE노트, 논술노트를 만들고 교과서도 재구성해 새로 썼다. 5명의 전담교사로 '생각의 난장'이란 팀을 구성해 1년 내내 첨삭 및 논술만 지도하도록 했다.

영어 수업도 영자신문 읽기, 일기 쓰기와 첨삭, 호주의 한 대학교 부설 연구소와 실시간 화상 강의 등으로 이뤄진다. 월 1회 체험학습도 '제대로 체험'하도록 짰다. 신문에 실린 해돋이 사진을 보고 전교생이 밤기차에 몸을 싣고 정동진에 다녀오는 식이다.

가온고의 성공신화가 알려지면서 전국 수십 개 학교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다녀갔다. M외고 등 특목고들도 이 학교 교육방식을 배워 그대로 적용했다. 서울 강남의 유명학원 강사를 모셔 논술 지도를 부탁했다가 오히려 강사가 가온고의 NIE노트를 가져다 학원에서 고액 강의 자료로 채택하는 일도 빚어졌다. 국회 주최의 논술교육 관련 공청회 및 교육부의 정책 관련 회의에서는 가온고의 교육 사례가 '공교육의 본보기'로 제시됐다.

윤치영 교사는 "교과서 위주의 교육을 탈피하니 해답이 보였다"며 "조금만 발상의 전환을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가온고등학교 외에 일반 초·중·고등학교 교단에서도 이 같은 시도는 점차 늘고 있다. 서울 강북의 명문으로 알려진 중계동의 재현고와 둔촌동의 동북고 역시 수년째 전교생에게 종합적인 글 읽기·쓰기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매일 아침 1·2학년 전체가 20분간 신문을 읽고 '사설(社說) 노트'를 작성하는 재현고의 시도나 각 과목 교사 4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릴레이 식 강의를 펼치는 동북고의 '팀티칭 통합논술'은 이미 '학교 명물'로 소문나 있다. 동북고 권영부 교사는 "학부모들이 학원보다 학교를 더 믿고 따르게 된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말했다.

방과후 학교가 훨씬 활성화된 초등학교들에서도 '전인교육의 본보기'로 NIE를 확대하는 추세다. 서울의 금성초, 대광초, 경기 고양 대화초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초등학교들이 NIE 전담 교사를 두거나 정규과목에 접목시켜 '열린교육'에 뛰어든 것이다.

최근 잠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입주에 맞춰 지난 9월 재개교한 서울 잠신초등학교(교장 이창근)는 '명문학교 1단계 프로젝트'로 '읽기 습관 기르기'를 선언하고, 그 첫 번째로 지난 20일 학부모들을 위한 NIE 강연회를 열었다. 이 학교 4학년 NIE를 맡은 전순애(53) 교사는 "개학 후 불과 5회밖에 실시하지 않았는데 벌써 아이들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며 "강남의 명문 학교들도 부러워할 최고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두 명의 교사에서 출발한 '풀뿌리 교육운동' NIE가 한 학년, 한 학교 전체를 울리고, 공교육 성공사례로 수많은 연구논문의 소재가 되고 있으며, 사교육의 성역인 서울 강남 학원가까지 '위협'하고 있다. 교육이 순행(順行)하기 시작했다.<조선일보 2008.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