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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올여름 더위 탈출, 바람과 물 그리고 요트다

백두진인 2011. 6. 23. 18:37

올여름 더위 탈출, 바람과 물 그리고 요트다

 

 

 

 

 

주말에 이런 취미 어때요―요트 배우기

 

요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는 사람들의 호사' '극소수 마니아의 레저'로 인식돼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가격이 합리적인 수준까지 내려왔다. 즐길 수 있는 지역도 부산 수영만, 경남 통영, 전남 여수 등 바닷가뿐 아니라 서울 여의도 같은 도심으로까지 확대됐다. 요트가 대중화하고 있는 것이다.

요트는 크기와 종류가 다양하지만, 극소수 호화 요트를 제외하고는 자연의 힘을 주 동력으로 하는 게 원칙이다. 우리의 전통 배인 돛단배를 연상하면 된다. 바람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소형 요트는 배우기도 쉽다. 올여름에는 요트를 배워 건강을 챙기며 더위를 날려보내자.
 

'바람을 읽는 스포츠', 딩기요트

지난 19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인근 한강에는 하얀색 요트 5대가 투명한 돛을 펄럭이며 떠다니고 있었다. 길이 2m, 폭 1m인 이 요트를 동호인들은 '딩기(dinghy)요트'라고 불렀다. 영화에 많이 나오는 대형 요트와 달리 단 한 명만 탈 수 있다.

배에는 모터 등 어떤 동력 장치도 없다. 요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오직 바람뿐. 이 때문에 '요트를 탄다'는 것은 '바람을 탄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10년 경력의 요트 강사 고현암(25)씨는 "물 위에선 바람을 거스를 수 없다"며 "바람을 읽고 이용하는 게 요트의 핵심"이라고 했다.

 

요트를 타고 물살을 가로지르다 보면 내리쬐는 여름 땡볕마저 뱃머리에 산산이 부서진다. 21일 서울 한강에서 한 요트족이 딩기 요트에 몸을 싣고 강물을 힘차게 가르고 있다.

 

이날 서울지역의 낮 최고 기온은 32도. 가만히 서 있는데도 땀에 흠뻑 젖었다. 뱃놀이를 보고만 있기엔 너무 더웠다. 서울마리나 요트아카데미 사무실 문을 열고 "딩기 요트를 타고 싶은데 며칠 배워야 되느냐"고 물었다. "2시간만 배우면 곧바로 물에 나갈 수 있다"고 한다.

거짓이 아니었다. 기자를 포함, 이날 처음 초보반에 등록한 3명은 2시간 교육을 받고 바로 한강으로 향했다. 바람이 잘 분다는 오후 4시쯤 요트를 한강으로 힘차게 밀고 올라탔다. 80㎏이 넘는 몸무게가 실리자 요트가 한쪽으로 기우뚱거렸다. "무게 중심을 잡으라"는 강사의 외침에 두 손을 바닥에 대고 납작 엎드렸다. 강변에서 잔잔해 보이던 강물은 요트에 오르자마자 흔들림이 크게 느껴졌다. 곧 평형을 되찾은 요트는 강 가운데로 둥둥 떠내려갔다.

한강에 떠 있으니 하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물 밖 세상과 달리 물 위는 고요했다. '쏴아 쏴아'하는 물소리와 멀리 '통통통'하며 들리는 유람선 엔진 소리가 유일하게 정적을 깨뜨렸다. 강물이 흔들리면 몸도 따라 흔들렸고, 세상도 함께 움직였다. 뜨겁게 달궈진 당산철교와 서강대교 교각에는 열기가 피어올랐지만 강물에선 서늘한 기운이 올라왔다. 에어컨 바람이 부럽지 않았다.

"뭐 하는 겁니까. 빨리 세일(sail·돛)과 러더(rudder·키)를 잡으세요!"

낭만도 잠시, 멀리서 강사가 외쳤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빙그르르 도는 것이 느껴졌다. 어찌할 줄 몰라 선체에 납작 엎드렸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배가 갑자기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옆으로 뒤집혔다. "풍덩!" 순식간에 물에 빠졌다.

 



선실을 갖춘 크루저 요트를 타고 전국 일주도 할 수 있 다. 지난해 여름‘제이(J) 24피트’요트를 타고 한반도 일주 중인 대학생들이 제주 김녕항 근처를 지나고 있다. / 허재성 영상미디어 기자 heophoto@chosun.com

 

바람과 물결에 온몸 맡겨

한강 둔치에서 바라보면 한강물에 빠지는 일은 썩 유쾌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강변을 벗어나면 꽤 근사한 강물이 된다.

강 가운데로 다가갈수록 물이 맑아지기 때문이다. 강사는 "물에 빠지는 것도 요트 즐기기의 일부"라며 웃었다.

물에 빠진 탑승자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배를 다시 뒤집어 세우는 것이다. 배 위에 올라가지 않으면 체온이 계속 떨어지기 때문이다. 강사에게 배운 대로 배 바닥에 세로로 솟아 있는 1m짜리 데거보드(daggerboard)를 붙잡았다. 몸무게가 데거보드에 실리면서 다시 배가 똑바로 세워졌다. 요트를 바로 세운 후에는 선미(船尾) 쪽에서 올라타야 배가 뒤집히지 않는다.

"세일과 러더 잡는 법 잊지 마세요!"

올라타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던 강사가 재차 강조했다. 이번에는 돛 줄을 쥔 왼손과 키 손잡이를 쥔 오른손에 힘을 꼭 주었다. 몸이 물에 젖어 바람이 더 시원했다. 더위는 어느새 까마득하게 잊었다.

요트 위에서 사람이 조작할 수 있는 것은 돛과 키가 전부다. 돛은 바람을 붙잡아 요트의 동력을 만든다. 바람은 요트를 앞으로도 측면으로도 밀지만, 배 아래 달린 데거보드 덕에 측면 방향 힘은 사라지고 앞으로 전진하는 힘만 남는다.

요트가 전진할 때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요트 뒤에 달린 키다. 손잡이를 잡고 키를 당기거나 밀면 요트는 좌회전 혹은 우회전을 한다. 직진하기 위해서는 키를 가운데 고정시켜야 한다. 키를 놓치면 배가 빙그르르 돌다가 뒤집히니 주의해야 한다.

모터보트를 탄 강사의 도움으로 요트는 다시 한강 북단으로 향했다. 왼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45도 틀어진 돛이 힘차게 펄럭이며 껴안았다. 요트를 타는 사람은 항상 돛의 맞은편에 앉는다. 등 뒤로 부는 바람과 강한 햇살이 젖은 몸을 말려줬다. 바람을 제대로 탄 배는 힘차게 나아간다. 이날 요트 속도는 5~10노트(시속 9.26~18.52㎞) 정도였다. 자동차보다 느리지만 배 위에서 느껴지는 체감 속도는 시속 30㎞ 이상이었다. 초보자라 빼뚤빼뚤 진행방향이 엉망이었지만 한강을 횡단하는데 5~10분이면 충분했다.

강 건너 반대편에 이르면 자동차 유턴(U-turn)을 하듯 요트도 180도 방향을 틀어야 한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트는 것을 태킹(tacking)이라고 하고, 바람을 등지고 트는 것을 자이빙(gybing)이라 부른다. 강사가 등 뒤에서 "태킹!"이라고 외치는 게 들렸다. 배운 대로 러더를 밀어 방향을 틀고, 재빨리 자리를 바꿔 앉았지만 손에서 러더가 빠져나갔다. 배가 또 한쪽으로 기울었다. "첨벙!" 이날 2시간 동안 3번이나 한강에 빠졌다. 하지만 물에 빠질수록 더위는 멀어져갔다.

이날 요트장에서 만난 '요트족'들은 "요트는 한번 맛들이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한강을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안호성(40)씨는 "이번이 네 번째인데 너무 재미있어 계속 탄다"고 했다. 이날 처음 요트를 배운 이정우(29·회사원)씨도 "다음 주에 또 올 것"이라고 했다.

요트가 재미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매 순간 새로운 바람과 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필성 서울마리나 요트아카데미 원장은 "물도 산처럼 오랫동안 사람이 오가던 길"이라며 "요트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201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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