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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학 등록금은 수익자 부담이 원칙

백두진인 2011. 6. 29. 15:16

대학 등록금은 수익자 부담이 원칙
이재웅/성균관대 명예교수 경제학

한나라당이 최근 내놓은 ‘등록금 부담 완화 및 대학 경쟁력 제고 방안’의 내용은 2014년까지 6조8000억원의 정부 예산을 투입해 대학 등록금 부담을 30% 이상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내년에 1조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대학 등록금을 10% 인하한다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여야 정치권이 그동안 무상복지 경쟁에 몰두하더니 이제는 반값 등록금으로 쟁점을 확대하고 있다. 그 핵심은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반액을 장학금의 형태로 정부가 보조하거나 또는 정부가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통해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등록금 문제에 대한 합리적 토론과 실질적인 대안 마련은 찾아보기 어렵고, 포퓰리즘만 난무하고 있다.

등록금 문제가 대학에서 쟁점이 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였다. 당시에 운동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학의 과도한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매년 학생과 대학 당국 간에 ‘등록금 조정위원회’가 구성되고 등록금 인상률이 논의된다. 마치 노사간 임금 단체협약과 유사한 협약을 통해서 등록금이 결정됐다. 초기에는 ‘천막을 치고’ 학생들이 농성을 하거나 대학본부를 점거하는 투쟁 형태였으나 근래에는 대학 당국과 학생들이 합리적 토론을 통해 등록금 수준이 결정됐다. 적어도 대학에는 교육의 수요자와 공급자 간에 어느 정도 시장 원리를 통한 등록금 결정 메커니즘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번에 한나라당이 제기한 반값 등록금 논란은 이 같은 합리적 결정 과정이 결여됐다. 등록금 논란의 당사자도 아닌 정치권이 합리적인 근거나 대책도 없이 일방적으로 등록금을 절반으로 깎아주겠다는 선심성 구호로 시작됐다. 이해 당사자인 대학생들조차 대학이나 정부에 등록금을 반으로 깎아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은 사안을 앞장서서 들고 나온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무책임한 논의가 국정을 책임져야 하는 집권 여당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재정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반값 등록금 문제는 현재와 같은 정치권의 일방적인 문제 제기보다 책임 있고 균형 잡힌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려면 국민 세금 7조5000억원이 소요될 것이다. 한국은 현재 고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을 간다. 만약 정부가 세금을 지원해 등록금을 낮춘다면 대학진학률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세금을 걷고 모든 국민에게 일률적으로 등록금을 내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대학 입학은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 행위다. 자기 발전과 미래의 향상된 삶을 목표로 대학에 진학하고 등록금을 낸다. 교육의 혜택이 일차적으로 본인에게 귀속된다는 점에서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 합당하다. 대학을 가지 않는 사람 또는 제3자가 대신 등록금을 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가정 형편이 빈곤해서 등록금 부담이 어려운 계층에는 장학금 및 학자금 융자 제도를 활성화해서 해결해야 할 일이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대학의 자율성과 재정 자립도를 높이고 산·학 협동, 기부금 장려, 기금 마련, 기여입학제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 혈세로 등록금을 내고 생색은 정치권에서 내는 건 속임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학의 적립금은 학교 발전을 위해 마련해둔 장기 투자기금이기 때문에 일각의 주장처럼 이를 등록금으로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 복지 비용 때문에 국민의 조세 부담이 크게 늘 것이다. 따라서 대학 등록금은 가능하면 수익자 부담 원칙을 지키는 것이 낭비를 줄이고 재원 조달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다. 내년의 총선·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은 경쟁적인 재정 포퓰리즘 확산을 단념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201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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