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총리들의 용기
스웨덴 총리들의 용기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 총리가 최근 정년을 현행 65세에서 75세로 연장하자고 제안했다. 앞으로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연금 등 복지비용 부담도 늘어나는데 75세로 정년을 늘려 계속 일하게 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다. 프레데릭 라인펠트 총리는 "연금제도는 마법에 기초해 있지 않다"며 "국민이 정년 연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높은 수준의 복지 지출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스웨덴은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의 18%를 넘고, 80세 이상의 노인이 인구의 5%를 초과하는 초고령화를 겪고 있다.
총리의 이런 발언은 즉각 야당과 국민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복지예산을 축소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스웨덴 야당인 사회민주당의 토마스 에네로스 대변인은 "더 일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도발적인 언행"이라고 주장했다. 현지 언론이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90%의 국민이 이 정책에 반대했다. "일만 하다가 죽고 싶지 않다" "노인들이 계속 일하면 청년층 일자리 부족은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데 총리가 이같이 인기 없는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2006년 집권한 라인펠트 총리는 평등주의 이념의 상징인 부유세 폐지를 선언하고 38세의 안데르스 보리를 재무장관으로 임명했다. 젊은 보리 장관은 "사회 전체가 지나친 복지라는 에이즈에 걸려 있다"고 스웨덴을 진단하고 '무임승차하는 복지'에서 '일하는 복지'로 사회체질을 바꾸기 위해 연금을 대폭 줄이는 동시에 의료보장 수준을 낮추었다. 이런 개혁 덕분에 유럽 전역이 재정위기로 몸살을 앓는 와중에도 스웨덴은 무풍지대일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웨덴이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이처럼 필요할 때 국민에게 고통을 감내해달라고 요구하는 정치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임 스웨덴 총리인 예란 페르손도 재임 시절 연금·임금 개혁을 단행하는 '페르손 플랜'으로 1990년대 경제위기를 극복했다. 그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혜택을 전달하는 체계가 경쟁력을 갖추고 효율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복지는 세금만 축내는 제도로 전락한다"며 "재원과 지출 간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살피고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인펠트 현 총리는 중도우파연합 소속이고, 페르손 전 총리는 좌파연합 정권을 이끌어 정치적 입장은 달랐지만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같았다.
스웨덴 정치인들이라고 왜 당장 유권자의 표가 급하지 않을까. 그러나 페르손 전 총리는 "재정위기에 처한 정부가 할 일은 곳간을 단속하고 씀씀이를 줄이는 것"이라며 "실천은 고통스럽고 지지율도 떨어지겠지만, 훗날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정치인으로 해야 할 선택은 명백해진다"고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정치권에는 어려운 시기이니 국민도 고통을 분담해달라고 말하는 정치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여야가 경쟁적으로 무상복지 확대 등 국민이 현혹할 만한 선심성 정책을 내놓고 있다. 스웨덴의 복지보다 스웨덴의 용기있는 정치인이 더 부럽다. <조선일보 201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