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 자는 교사평가 법안
긴 잠 자는 교사평가 법안
안석배 사회정책부 차장

미셸 리 전(前) 미국 워싱턴 D.C. 교육감은 2007년 6월 취임 직후 워싱턴 북동쪽의 슬로웨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학교 복도에는 "학생과 학부모가 극복하지 못하는 문제는 교사도 극복하지 못한다"는 글이 쓰여 있었다. 아이들 실력 부족의 책임은 학교나 교사에게 있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의 교육개혁 키워드인 '교사 경쟁력 회복'은 이때 싹텄다.
미국 전역에서 바닥 수준이었던 워싱턴 D.C.의 학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미셸 리 교육감의 투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2010년 10월까지 재임하는 동안 그는 학력 미달 학교를 폐쇄하고 무능한 교사 400여명을 해임하는 초강경 개혁을 단행했다. 심지어 자신의 딸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까지 해임했다. 대신 학생 성적을 올린 교사에게는 더 많은 임금을 주는 정책을 도입했다.
'공교육 개혁의 전도사'와 '무자비한 마녀'라는 양 극단의 평가를 받았던 그는 미국 교육계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해 워싱턴포스트가 뽑은 '1986년 이래 워싱턴을 가장 많이 변화시킨 25가지 사건' 중 하나로 '미셸 리의 교육개혁'이 선정됐다.
지난 16일 미국 뉴욕주는 교원노조와 새로운 교사평가안에 합의했다. 앞으로 교사들이 받는 평가점수 중 40%는 학업성취도 평가 등 학생들의 성적에 따라 결정되며, 나머지 60%는 교장 평가와 수업참관 등으로 매긴다. 교사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교사가 다음 해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해고할 수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이 합의소식을 듣고 "100만명 학생들에게 기쁜 소식"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환영했다.
뉴욕주가 새 교사평가제를 합의한 열흘 뒤인 27일, 한국 국회도 교사평가제를 법안 심사 의제로 올렸다. 하지만 늘 그랬듯 결론은 없었다. 2006년 12월 교사평가제 법률안이 제출된 지 5년2개월, 교사평가제 도입을 정부에서 논의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12년이 지났다. 이번에도 일부 국회의원들이 "교원단체의 의견을 더 들어봐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교조 눈치 보기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우리 국회에 머물고 있는 법안은 워싱턴 D.C.나 뉴욕의 교사평가안처럼 과격하지도 않다. 교사평가를 법제화해 안정적으로 실시하자는 것이다. 국민 86%가 찬성하는 교사평가제가 우리 국회에서 긴 잠을 자고 있는 사이, 미국·일본 등은 교사평가 결과를 어떻게 학교 발전 자료로 활용할지 고민 중이다.
교육개혁에는 당연히 저항이 따른다. 미셸 리 교육감도 개혁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교원노조·의회와 임기 내내 힘겨운 싸움을 했다. 일부 교원노조원들은 "여기가 리지스탄(Rheezistan· 미셸 리의 성과 아프가니스탄의 합성어)인가!"라는 피켓을 들고 그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미셸 리는 그때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위해 좋은가, 나쁜가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3년 후 워싱턴 D.C. 학생들의 학력향상이 그의 성과를 보여줬다.
우리 국회 서류철에 수년째 처박혀 있는 교사평가제 법안은 아이들에게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우리에게도 미셸 리 같은 교육개혁가가 필요하다. <조선일보 2012.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