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책 쓰기 교육
책 쓰기 교육
'어머니와 들길에 서면/ 내 가슴이 바다보다 넓어지고/ (…)/ 단 혼자/ 어머니의 별빛만 안고 가는 밤엔/ 내 노래가 메아리처럼/ 멀어가고….' 황동규 시인은 1953년 서울중학교 2학년 때 청소년 교양지 '학원'에 시 '어머니'를 발표했다. 조지훈 시인이 수많은 중고생 투고작 중에서 골랐다. 그는 황동규 학생에 대한 심사평에서 "매우 유망하지만 너무 자연스러워 못내 염려스럽다"고 했다. 너무 이른 재능이 자칫 조로(早老)할까 봐 걱정했다. 그러나 황동규는 1958년 등단해 50년 넘게 시를 쓰고 있다.
▶1950~60년대 문학 소년과 소녀들은 '학원'을 글쓰기 직업의 등용문으로 삼았다. 소설가 황석영 최인호, 시인 문정희, 평론가 김병익에 이르기까지 숱한 문인이 '학원'에 사춘기의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70년대 TV 시대가 열리자 독자층이 계속 줄었다. '학원'은 1979년 2월 마지막 호를 내고 사라졌다.
▶청소년 문화에서 문학 지망생은 어느덧 희귀종이 됐다. 학교에선 글쓰기 교육도 하지 않는다. 이런 판에 대구에서 청소년 문예부흥이 일어났다고 한다. 대구 교육청이 2009년부터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책 쓰기 교육을 펼치고 있다. '학생 저자 10만명'을 키우겠다고 시작한 지 4년 만에 학생 4만여명이 책을 써냈다. 교사가 학생들을 지도해 시와 소설, 동화 같은 문학 창작뿐 아니라 여행기와 교양 과학서도 냈다. 중학생들이 공동으로 쓴 '수학 이야기로 수다수다(數多數多)'를 비롯해 일흔여덟 권이 정식 출판됐다.
▶대구의 초·중·고교에서 책 쓰기 동아리는 어느덧 800여개나 된다. 경북여고를 비롯해 책 쓰기를 정규 과목으로 정한 학교도 10여곳이라고 한다. 학생들은 "서로 쓴 글을 돌려보며 말로 다하지 못한 속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아이들은 글을 쓰면서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친구를 더 깊이 알게 된다. 더 알찬 글을 쓰고 싶어 더 많은 책을 읽는 선순환(善循環)도 일어난다.
▶몇 해 전 프랑스의 원로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의 집에 간 적이 있다. 그는 중학생들로부터 방금 받은 문집을 꺼내 자랑했다. 투르니에가 '어느 날 내게 여자가 생길 것이다'라고 쓴 산문을 중학생들이 패러디해 쓴 글을 모았다. '어느 날 내게 배가 생길 것이다' '어느 날 내게 고양이가 생길 것이다'라는 식으로 자기만의 꿈을 표현했다. 아이들의 재기 발랄한 글에 노작가도 무릎을 쳤다. 그는 "문학 만세"라고 외쳤다. 대구에서 일어난 '책 쓰기의 행복'이 다른 곳에서도 활짝 꽃을 피워야 한다.<조선일보 2013.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