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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遺産, 이젠 자식 아닌 사회에 남기자"

백두진인 2014. 2. 16. 16:19

"遺産, 이젠 자식 아닌 사회에 남기자" 

 

 

류시문 회장 등 사회 지도층 8명, 유산 기부 캠페인에 동참 서약
"지금의 우리 만들어준 사회 위해 떠날때 일부라도 돌려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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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문 '노블레스 오블리주 시민 실천' 회장 등 8명은 15일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아 자신의 유산(遺産)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고 가는 '유산 기부, 아름다운 약속'에 동참하겠다고 서약했다.

이들은 ▲번 돈 잘 쓰고 가고 싶어서 ▲자녀에게 좋은 뒷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워 준 어려운 이웃을 잊지 못해서 ▲마지막 남은 집 한 채까지 기부했던 어머니를 닮고 싶어서 ▲자신처럼 어렵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 유산 기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순간이 있었지만 인생 중반을 넘기고 보니 지금 우리가 있기까지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음을 깨달았다"며 "일부라도 사회에 되돌려주는 것이 의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장애를 딛고 연매출 50억원의 한맥도시개발(건축물 안전 진단 회사)을 일군 류 회장은 지난 20여년간 30억원 넘는 돈을 기부했지만 "제가 받은 큰 사랑을 사회에 되돌려주고 가는 것이 내 일생의 꿈"이라고 했다.

15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유해진 세무사, 남궁정부 소장, 김은기 전 참모총장, 이청자 상임고문, 류시문 회장, 강지원 변호사, 김창기 교수, 김대열 회장(왼쪽부터) 등이 자신의 유산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서약을 한 후,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성형주 기자

이 서약에는 김은기 전 공군 참모총장, 강지원 변호사, 김대열 홀트아동복지회장, 김창기 한국교통대 교수, 남궁정부 세창정형제화연구소장, 이청자 한국재활재단 상임고문, 유해진 세무회계사무소 대표가 함께했다.

'유산 기부, 아름다운 약속'은 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후에 공익 목적으로 기부하겠다는 서약이다. 원칙적으로 기부하는 유산 금액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유산을 기부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유산의 일정 비율 또는 액수를 기부하겠다고 서약하고, 나중에 공증을 받으면 법적 효력을 얻는다. 유산 기부를 하면서 결식아동, 장애인, 노인 등과 같이 어디에 쓸지 지정할 수도 있다.

본지는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 발달한 유산 기부가 우리 사회에도 보편적인 문화로 정착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공동으로 '유산 기부, 아름다운 약속'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이동건 공동모금회 회장은 "생애를 아름답게 정리하는 마지막 나눔에 대해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며 "나를 지켜준 이 세상을 위해 내가 가졌던 것의 일부를 되돌려준다는 의미가 유산 기부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국민의 유산 기부 의향 비율 그래프
 
우리나라 국민의 유산 기부 의향 비율 그래프

한맥도시개발 류시문(65) 회장은 왼쪽 다리를 절고 제대로 듣지도 못하는 장애를 갖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안 되겠구나’ 좌절하고 방황하던 대학 시절 만날 때마다 “너는 반드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며 다독여준 스승이 있었다. 류 회장은 “이여진·신연식 한신대 교수 부부는 저를 친아들처럼 보살펴주셨다”며 “남을 도우라는 그분들 뜻대로 남은 재산 대부분을 기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류 회장과 함께 기부 서약에 동참한 이들은 한결같이 삶을 마무리하면서 자신들을 키워준 사회에 빚진 것을 갚고 싶다고 말했다. 남궁정부(72) 세창정형제화연구소 소장은 1995년 지하철 사고로 오른팔을 잃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10대 시절부터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다 구두 기술을 배웠다.

평생 수제화를 만들어 온 남궁 소장은 자신이 장애인이 되고 보니 “장애인 발에 눈길이 가더라”고 했다. 이후 17년간 재활의학 원서까지 찾아보며 양다리 길이가 다른 사람, 소아마비 환자, 당뇨 환자, 의족 신는 사람 등 2만여명 발에 맞춘 신발 7만 켤레를 만들었다. 남궁 소장은 “휠체어만 타던 30대 여성이 내가 만든 신발을 신고 걷더니 ‘구름 위를 걸으면 이렇게 좋을까요?’ 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며 “내가 더 이상 신발을 만들 수 없을 때 유산이라도 남겨 이분들의 발이 되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뒷모습 남기겠다"

제30대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김은기(61)씨는 “군에 있을 때는 임무 수행에만 몰두했는데, 퇴역하고 보니 이사를 서른 번도 넘게 다닌 아내와 두 아들의 희생이 컸더라”고 했다. 그는 “두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고 싶어 유산 기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청자(69) 한국재활재단 상임고문은 6·25 때 아버지가 납북되고 홀어머니(89) 밑에서 자랐다. 그러나 이 고문의 어머니는 남은 집 한 채까지 기부했다. 재산이 없어 정부에서 기초노령연금이 나오자 “나라 도움 받을 일 없다”며 거부했다. 그는 “어려운 형편에도 모든 것을 내놓는 어머니에게서 기부를 배웠다”면서 “장애로 일찍 세상을 뜬 아들도 잘했다고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홀트아동복지회 회장이 된 김대열(58)씨와 공고·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세무사가 된 유해진(62)씨는 모두 어렵게 공부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기부 서약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나처럼 어렵게 공부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면서 “나중에 많이 남겨 주려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인생 목표도 생기더라”고 했다.

김창기(55) 한국교통대 교수는 “인생에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워 준 이들을 위해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면서 “가진 게 얼마 되지 않아 유산 기부라 하기도 부끄럽다”고 했다.

사회 지도층이 모범 보여야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기부가 시작된 우리나라는 그러나 여전히 기업·법인 기부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자신이 모은 것을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 유산 기부는 더 드물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강철희 교수는 “유산 기부는 상대적으로 금액이 크고, 가족 반대도 흔해 가장 어려운 기부”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그만큼 사회 지도층이 앞장서야 할 일이 유산 기부”라며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며 큰 의미를 남길 수 있는 고귀한 행위”라고 했다.

강지원 변호사는 “오랫동안 청소년 상담을 해보니 큰 재산 물려주는 것이 오히려 자식의 재능과 열정을 죽이는 일이더라”며 “유산 일부라도 사회에 환원하면 그 모습 자체가 자식들에겐 더 큰 의미의 유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대인들은 가족·교회·사회에 각각 3분의 1씩 유산으로 남기더라”며 “가난했던 시절 재산·자식에 집착하던 데서 벗어나 우리 공동체를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전체 기부금 중 '遺産 기부' 비중 미국 8%, 영국 33%, 한국은 0.46%

 

美, 억만장자들이 서약 주도… 英, 2년전부터 '레거시 10' 운동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나누고 떠나는 '유산(遺産) 기부'에 아직 인색한 우리와는 달리, 미국·영국 등 선진국들은 이미 유산 기부가 기부의 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각국의 전체 기부금 가운데 유산 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을 따져보니 미국은 8%, 영국은 33%까지 이른다. 반면 한국의 유산 기부는 전체 기부금의 0.46%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도 개인이나 일부 나눔단체에서 진행하는 유산 기부가 있긴 하지만 아직 우리 국민 사이에서 '유산 기부' 자체가 생소하고, 저변도 약하다는 게 복지부 설명이다.

'기부 선진국'인 미국은 2010년 전체 기부금 2908억달러 가운데 유산 기부만 238억달러(약 8%) 정도였다. 미국은 특히 엄청난 부를 이룬 이른바 '억만장자'들이 '기부 서약(The Giving Pledge)' 운동을 펼치며 유산 기부를 이끈다. 자신의 재산 가운데 최소 절반 이상을 기부하자는 게 이 활동의 주요 내용이다. 이 활동은 2010년 6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에 의해 시작됐는데, 올 2월 현재 총 104명이 참여했다. 모인 자산만 5000억달러(약 532조6500억원)에 이른다. 노르웨이의 2012년 국내총생산(GDP) 5015억 달러에 맞먹는 규모다.

영국은 2011년 11월부터 유산 기부 캠페인 '레거시 10(Legacy 10)' 운동을 벌인다. 영국인의 10%가 자발적으로 유산의 10% 정도를 자선단체에 기부 서약하도록 하자는 게 이 캠페인의 목표다. 영국인들은 지금도 우리에 비하면 유산 기부 비율이 크게 높다. 영국인의 74%는 어떤 형태로든 기부하며, 영국인의 7%는 유산을 기부한다고 조사됐다. 영국의 2003년 유산 기부액은 14억파운드 정도였는데, 이는 영국 전체 자선 영역 수입의 33%에 해당했다. 그러나 영국은 현재 7%인 유산 기부자 비율을 '10%'까지로 올리고, 자신의 유산 '10%' 정도를 기부하며, 이렇게 하면 상속세의 10%(기존 40%→36%)를 감면해준다는 중첩적인 의미를 담아 '레거시 10'이란 이름의 캠페인을 벌인다. 억만장자인 영국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 금융 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의 제이컵 로스차일드 등이 이 캠페인에 동참했다.

복지부 고치범 나눔정책팀장은 "유산 기부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서 우리도 유산 기부를 하는 사람에게 상속세는 물론, 양도세·취득세 등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산 기부 캠페인 참여 어떻게

금액 제한 없고 기부금 사용처 지정 가능, 서약부터 하고 액수·비율 추후 결정할 수도 

 

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익 목적으로 기부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유산 기부, 아름다운 약속'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유산 기부는 법적으로 복잡한 문제다. 사후에라도 유족이 문제를 제기하면 자칫 소송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법률·회계 등 각 분야 전문가 그룹을 선정해 유산 기부 절차와 방법을 상세하게 안내할 예정이다.

원칙적으로 기부하는 유산 금액에는 제한이 없다고 공동모금회는 밝혔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1000만원 이상 정도를 기부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유산의 10%, 50%와 같이 비율로 기부를 서약할 수도 있고, 5000만원, 1억원 등과 같이 액수로 서약할 수도 있다.

유산 기부는 법적 문제가 없도록 공증을 받아야 효력이 생긴다. 공동모금회는 "우선 유산 기부 서약만 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우선 서약한 다음 시간을 갖고 기부 금액 또는 비율을 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동모금회는 유산 기부를 한 사람들을 '레거시 클럽(Legacy Club) 회원으로 위촉할 예정이다. 우선 서약만 한 사람들은 서약 회원, 공증까지 마친 사람들은 정회원, 유족이 고인 명의로 기부할 경우 특별 회원으로 각각 예우할 방침이다.

유산 기부를 하면서 기부금을 어디에 쓸지 지정할 수도 있다. 결식아동, 장애인, 저소득층, 노인, 외국인 근로자, 희귀·난치병 환자 지원에서부터 아프리카 에이즈 아동 지원까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특정 복지 시설을 위해 써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류시문 노블레스오블리주 시민실천 회장은 "사회 지도층이 앞장서 어려운 이웃의 눈물을 닦아줘야 정의로운 사회에 다가갈 수 있다"며 "많은 분이 함께 나누는 행복을 키우는 대열에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산 기부 문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담당자 02-6262-3091~2

 

 

<조선일보 201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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