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여행 - 정선 단임골
강원도에서도 오지가 많은 곳으로 꼽히는 정선. 그중에서도 정선군청 사람들이 꼽은 오지가 단임골이다. 왜 오지냐는 물음에 한결같이 "깊고 깊은 골짜기"라고 한다.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숙암교를 건너면서부터 인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59번 국도를 버리고 오대천을 건너면 좁은 임도(林道)가 길 안내를 한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가면 높은 터 마을인데, 믿기 어렵겠지만 지난 5월 전기가 처음 들어왔다. 그러나 외지에서 들어온 이들이 번듯한 통나무집을 짓고 살아 순수한 오지라고 보긴 어려웠다. 왼쪽 임도가 단임골로 가는 길이다. 자연의 영역 속으로 서서히 차를 몰고 들어간다. 1㎞, 3㎞, 6㎞ 계속 들어가도 좁은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깊은 산골이지만 볕이 잘 들고 완만해 두려움이나 긴장감보다는 편안한 기분이다.- ▲ ▲정선 단임골 깊은 곳에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한 이옥경·유동열씨 부부. 서울에서 살다가 귀농(歸農)을 하려고 3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다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김영선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단임골은 산세가 만든 오지다. 능선을 보면 알파벳 'U'를 뒤집은 모양인데, 가운데에 단임골이 자리하고 있다. 골의 폭이 좁아 띄엄띄엄 집이 있다. 마을이 여럿 들어설 만한 터는 아니다. 골은 10㎞가 넘을 정도로 긴데, 정선의 산세답지 않게 아무리 들어가도 길이 완만하다. 골은 순하지만 산세는 가팔라 양옆을 벽처럼 에워싸고 있다. 계곡은 맑디맑아 매연을 뿜으며 차로 들어가는 게 미안할 지경이다.
한참을 들어가다 주민에게 말을 건넨다. 차 한잔하고 가라고 손목을 붙잡더니 밥 먹고 가라고 하고, 아예 자고 가라는 서덕원(58)씨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퇴직하고 내려온 그는 단임골을 택한 이유에 대해 "남향이라 볕이 잘 들고 오지라서 농약이 없고, 밤에 별이 쏟아지는 느낌이 좋다"며 사춘기 소년처럼 들뜬 표정으로 얘기한다. 그는 단임골의 삶이 자신에게 휴식년제 기간이며, 그래서 수염에도 휴식을 주기 위해 기른다고 농을 섞어 말한다. 그가 보물처럼 보여주는 것은 창고에 새끼를 낳은 산새 둥지다.
골에는 시멘트로 담을 쌓아둔 곳이 간간이 눈에 띈다. 2006년 주민들이 헬기로 구조됐을 정도로 큰 수해가 났고 복구 과정에서 시멘트 담이 생겼다. 하지만 상류 쪽 골은 옛날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새초롬하고 싱싱한 이끼가 센스 있는 인테리어처럼 곱상한 매무새로 골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크게 보면 단임골은 박지산(공식지명 두타산·1391m) 계곡인데, 박지산 하면 산꾼들에게 말복(末伏)에도 계곡에서 얼음이 나온 산으로 유명하다. 사진작가들에게는 예쁜 이끼사진을 담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안단임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다향산방'이라는 민박이 있다. 역시 서울에서 내려온, 그러나 들어온 지 10년 넘어 단임골 주민이 다 된 유동열(57)·이옥경(57) 부부가 살고 있다. 이들은 귀농을 위해 3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다 이곳에 정착했다. 귀농 정착지를 택하는 데 나름의 기준이 있었는데, 뒷산이 1000m 이상이고 물이 맑아야 하며 골짜기가 남향이어야 하는 조건을 만족시킨 게 단임골이었다. 그의 집은 단임골 입구에서 8㎞ 들어온 지점, 해발 700여m에 자리하고 있다.
- ▲ 단임골 하류의 전경. 청정 자연미가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2006년 큰 수해를 입어 곳곳에 시멘트 담이 만들어졌다. /김영선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하우스농사를 짓고 나물을 캐는 강원영씨는 단임골 토박이다. 6·25 직후에는 80여 가구가 살았던 적도 있었다. 천혜의 피난처로 화전(火田) 농사를 지었는데, 1970년대 강제로 화전민을 이주시키면서 대다수 주민들이 빠져나갔다. 전기가 처음 들어온 게 1995년이다.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이 되면 토박이인 본인조차 감탄할 때가 많다고 한다.
단임골은 10년 전부터 휴식년제를 시행 중이다. 워낙 길고 완만하며 깨끗한 계곡이어서 언론 소개 없이도 입소문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고 한다. 1990년대에는 계곡이 피서객 텐트로 가득 찼는데, 휴식년제를 시행하면서 평화를 되찾았다. 물놀이를 제외한 야영과 취사 등은 금지되어 있다.
아무리 들어가도 평평한 단임골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투명하고 차분한 힘이 있다. 고요함은 점점 짙어지지만 도시에서 온 이에겐 포근한 행복감마저 준다. 어여쁜 이끼가 자꾸 물장구나 치며 놀다가라고 붙잡는다.
찾아가는 길
영동고속국도 진부나들목을 나와 정선 방면 59번 국도를 따라간다. 27㎞ 남짓한 지점에서 왼쪽 숙암교를 건넌 다음 좌회전, 10.8㎞ 정도 가면 안단임이다. 대중교통은 진부나 정선에서 버스를 타고 숙암리에서 내려 3시간쯤 걷는다. 안단임에 다향산방(033-562-3851)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 단임골은 완만하고 골이 길어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에게 최적의 환경이다.<조선일보 2011.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