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복지 일본의 餓死
차학봉 도쿄 특파원

지난 1월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시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자매가 상당 기간이 지나 발견됐다. 병을 앓던 언니 사노 고즈에(佐野湖未枝·42)씨가 먼저 사망하고 지적 장애가 있던 여동생 메구미(惠·40)씨가 이어서 굶어 죽은 것이다. 요금 체납으로 작년 11월 말부터 이미 집의 가스와 전기가 끊긴 상태였다.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홋카이도의 차디찬 겨울을 담요 한 장으로 버티며 배고픔과 싸우던 동생은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언니의 휴대전화에는 도움을 청하기 위한 전화 발신 흔적도 있어 최후까지 살기 위해 발버둥친 것으로 보인다.
사노씨는 다니던 회사가 폐업한 후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일을 거의 하지 못했다. 지난해 삿포로 시청을 찾아가 생활보호 신청 상담을 하기도 했다. 일본은 젊은이들도 수입이 없으면 생활보호 신청을 해서 1인당 월 6만엔(약 80만원)~8만엔(약 10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당시 시청 직원이 "생활보호 신청 조건 중 하나가 열심히 구직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사노씨는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집에서 수많은 이력서가 발견된 점으로 보아, 그녀는 구직 활동을 더 맹렬하게 한 다음 생활보호 신청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NHK는 전했다.
일본의 민주당 정부는 저소득층뿐 아니라 소득에 관계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아동수당, 고교 무상 교육, 고속도로 무료화 등 이른바 '무상 복지'를 대폭 확대했다. 덕분에 연봉을 수억원씩 받는 외국인 금융기관 주재원까지 선심성 무상 복지 혜택을 만끽하고 있다. 하지만 한정된 재원이 무상 복지 쪽으로 쏠리면서 정작 지원이 필요한 저소득층은 복지에서 소외되는 사례가 늘어났다. 일선 행정기관이 재원 부족을 이유로 생활보호 대상자를 줄이기 위해 이런저런 장벽을 친 것이 결국 사노씨 자매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민주당 정부가 무상 복지를 대폭 확대하면서 사노씨 자매처럼 아사(餓死)한 후 한두 달 지나서 발견되는 고립사(孤立死)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어떤 나라도 정부 재원은 한정될 수밖에 없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예산을 집행한다. 일본에서 무상 복지 열풍이 불면 정작 지원이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복지 혜택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반성론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정부는 2009년 선거 승리의 비결이라던 무상 복지 공약을 상당수 폐지하거나 축소하고 소비세 인상까지 추진하고 있다. 더군다나 민주당은 지금 두 쪽 날 위기에 처했다.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무상 복지 유지가 필요하다는 세력과, 나라가 망하게 두고 볼 수 없다는 무상 복지 폐지파로 나뉘어 정쟁(政爭)을 벌이고 있으며, 정당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다.
한국에서도 여·야당이 총선을 앞두고 소득에 관계없는 무료 급식과 무료 보육 등 연간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공약 경쟁을 펼치고 있다. 공짜 복지를 싫어할 사람은 없지만, 정부 예산은 화수분이 아닌 만큼 신중해야 한다. 사노 자매의 비극이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정치권이 '복지의 정의(正義)'에 대해 득표(得票)가 아니라 국민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렸으면 한다. <조선일보 201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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